[잠망경] 환경 변화
당신과 나는 환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던 옛날, 판자때기처럼 펀펀한 세상 끝을 벗어나는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믿었던 선조를 둔, 그야말로 육지에 서식하는 뭍살이동물이다. 시대적 배경 또한 우리가 처한 환경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법. 생각해 보라. 중세기를 살던 사람들과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 완전 딴판이라는 점에 대하여. 중세기인들은 종교적 사고방식에 매달리는 경건한 삶을 살았고, 지금 지구촌 누리꾼들은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 셀폰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는 시대적 배경의 차이점에 대하여.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 “정신과 약이 내 영혼에 해롭다고 신이 알려줬기 때문에 약 먹기를 거부한다.” - “신이 내게는 정신과 약이 모든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 “그렇다면 나의 신과 너의 신이 만나 말다툼을 해서 이기는 쪽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 “그럴 필요가 없다. 너와 나는 이미 지금 각자의 신을 대변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잖아!” - “미친 소리 하지 말아라. 아무리 의사지만 어찌 니가 신을 대변하느냐. 신이 너를 대변해야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신적 환경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종교인 것 같다. 종교는 모든 정신기능의 초석(礎石, cornerstone)이요, 율법(律法, Commandment)이기도 한 것을. 전 인류가 음으로 양으로 준수해온 질서와 격식이다. 수련의 시절. ‘FBI’가 자신을 감시하고 따라다닌다고 굳게 믿는 입원환자가 있었다. 의대 본과 3학년 임상 실습 때 중앙정보부에서 저를 미행한다고 우기던 농촌 출신 젊은 환자도 떠오른다. 시대 배경이 달라지면서 환자들 망상의 소재 또한 변천하는 것이다. 정신상담에서 거론되는 ‘holding environment’라는 컨셉이 있다. 구글은 우리말로 ‘안아주는 환경’ 또는 ‘보듬어주는 환경’이라 낭만적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holding’을 유아의 양육과정에서 목격하는 모성애의 현현한 발로라고 그리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hold’에는 정지시킨다는 의미가 철철 넘치고 있기 때문이지. 발음도 비슷한 군대용어 ‘Halt!’는 ‘제자리 섯!’ 하며 동작을 중지하라는 명령어. ‘hold’와 ‘halt’는 말뿌리가 같다. 당신의 요가강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Hold your breath!” 하면, 잠시 숨을 멈추라는 말. 전화 도중 상대가 “Please, hold!” 하면, 잠자코 기다리라는 요구. “Hold on!” 하면, “잠깐만!”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자 로버트 클로닝거(Robert Cloninger: 1944~)는 사람의 기질(temperament)을 셋으로 구분한다. ①새로움 추구(Novelty Seeking) ②손상 회피 (Harm Avoidance) ③보상 의존(Reward Dependence). 다른 말로 하면, ①자극(스릴) 추구 ②위험 회피 ③사회적 민감성. -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거나 위험을 피하면서, 또 한편 무엇에 의존하며 사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성행하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정신상태는 중세기식 종교적 경건성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에 대두하는 챗GPT의 정보력에 의존하는 경로를 밟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이 내리는 충고대로 약 먹기를 거부하는 그 환자에게 인공지능이 속전속결로 전해주는 정보를 따르라는 지시를 가볍게 내려볼까 하는데. 속으로는 글쎄다, 하면서라도.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환경 변화 환경 변화 정신적 환경 holding environment